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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자르 신학적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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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ans Urs von Balthasar) (1905-88)


서론

현대 가톨릭 신학계에 빠져선 안될 인물들이 있다.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든 칼 라너 수사, 교황무류성을 비판해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교사직(missio canonica)을 박탈당한 한스 큉, 예수를 역사적 관점과 신앙적 관점으로 나눠 정의하는 것을 경계한 로마노 과르디니 신부 등등 유명한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이고 오늘날 가톨릭뿐 아니라 전 교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이라는 사람이 있다. 필자는 개신교 신학을 전공하였음에도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의 신학적 미학에 매료되었다. 그의 신학은 너무도 매력적이다. 개신교 신학계에서도 뜨거운 감자이며, 현재 그를 연구한 신학자만 국내에서 10여명, 전세계적으로 1000여명에 육박한다. 필자는 이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분들에게, 이제 막 신학과 미학의 대화의 장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발타살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인물과 생애

1905년 8월 12일 스위스의 루체른(Luzern)에서 아버지인 건축가 오스카 루드비히 발타살(Oskar Ludwig Balthasar)과 헝가리 귀족출신의 어머니 가브리엘 발타살-피체커(Gabrielle Balthawsr-Pietzcker) 사이에서 태어난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1905-1988)은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부모의 다양한 언어와 개방적인 가정적 분위기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당시 자유주의의 물결로부터 거센 반대에 부딪히던 가톨릭 교회가 궁지에 몰려 있던 상황을 인식하고, 후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던 가톨릭의 개혁(renouveaus catholique)을 자신의 중심과제로 발견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그는 고향에서 고등학교 과정을(Gymnasium 1917-23)을 마치고 빈, 베를린, 취리히 대학 등에서 독문학을 전공 하였고, 이어서 1928년에 취리히에서 <현대 독일 문학 속에 나타난 종말론적 사상의 역사>라는 논문으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그에게 학업 중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두 사람은 심리학자이자 중세철학의 권위가로서 철학적 대화법을 가르친 루돌프 알러스(Rudiolf Allers)와 베를린에서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강좌를 심도 있게 가르친 로마노 과르디니(Romano Guardini)였다.

발타살은 학위를 취득한 직후 예수회에 입회하였으며(1929), 그 후 독일 뮌헨 근교의 풀라흐(Pullach 1930-33)에서 철학을 전공하면서 에릭 프르치바라(E. Przywara, "에리히 프지와라" 라고도 불린다. 1889~1972)를 만났고, 프랑스 리옹 근교의 푸르비에르(Fourviere)에서 신학을 전공하면서는 앙리 드 뤼박(Henri de Lubac, 1896~1991)과 친분을 나누며 그에게 교부들의 문헌과 프랑스 문학의 세계와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1933-36).

교회로부터 가장 많은 의혹과 비난을 받았던 신부, 제2차 바티칸공의회와 함께 교회와 신학에 쇄신을 불러일으켰던 신학자, 그가 바로 프랑스 예수회의 앙리 드 뤼박(Henri de Lubac, 1896~1991) 신부다. 그는 명실공히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인정받아 추기경에 서임됐다.

 1936년 7월 26일에 뮌헨 예수회 성당에서 사제 수품을 받고, 이 후 2년간(1937-39) 독일의 고전의 출판과 프랑스 가톨릭 작가들(P. Claudel, C. Peguy, G. Bernanos, F. Mauriac)의 작품을 주로 번역하였고 독일 신학잡지 “시대의 목소리”(Stimme der Zeit)에서 활동하면서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1940년에 자신의 첫 번째 인생의 진로에서 스위스 바젤의 대학생 영성지도 신부가 되기를 결정하고 그 곳에서 이냐시오 영성피정 지도자로서 세상과 교회와의 관계에 대하여 깊이 있게 강의하는 동시에
‘학생배움공동체(Studentischen Schulungsgemeinschaft)’를 결성하고 당대의 명사들을 초빙하여 강연하도록 주선 하였다. 바젤에서 칼 바르트(Karl Barth)를 만나고 그와 죽기까지 깊은 친교를 맺으면서 개신교와의 신학적 대화를 지속하기도 했다.

그에게 깊은 사상적 변화를 가져다준 여의사 아드리엔 폰 스파이어와의 만남과 그녀와의 공동연구를 통해서 영적인 감명을 받은 발타살은 1945년에 수도서약을 하면서 동시에 재속 공동체의 성격을 지닌 ‘요한공동체(Johannesgemeinschaft)’를 설립한 후 ‘요한출판사(Johannes Verlag)’에 헌신하였다. 영적 지도자이자 저자로서의 그의 활동은 이후로도 그의 활동의 중심을 이루었다. 오랜 영적인 고민 끝에 그가 예수회를 탈퇴한 이후(1950), 사제로서 여성인 아드리엔느와의 신학적 공동 작업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던 교회의 비난과 그의 친구였던 뤼박이 그의 새신학에 대한 강의 금지조치를 감수하면서 1956년에 Chur 교구로 다시 입적될 때 까지 그는 자신에게 닥친 시련의 시기를 교회와 세상과의 새로운 관계와 영성의 변혁을 촉구하는 왕성한 저술활동을 통해서 슬기롭게 극복해 나갔다. 그의 대표작인 3부작, ‘영광(Herrlickeit)’, ‘신의 연극학(Theodramatik)’, ‘신의 논리학(Theologik)’도 이 시기에 저술되었다.

가톨릭 교회의 변혁기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그가 전문 신학가로 적극적인 참여를 할 수는 없었지만 공의회 교부들에게 자신이 오랜 기간 연구해온 계시에 대한 역동적 이해를 통해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동시에 세상에로 파견된 교회에 대한 영감을 주었다. 공의회 이후에는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에 깊이 관여하여 1972년에 국제가톨릭잡지(Internationale katholische Zeitschrift Communio)를 발간하면서 그의 교회에 대한 열정을 엿보게 하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8년 5월 28일에 그의 생애의 업적을 존중하는 의미로 추기경으로 임명했으나 1988년 6월 26일 추기경 서임 이틀 전에 선종하였다.


2. 사상적 배경

발타살은 당시 가톨릭 교회의 신스콜라적 신학의 분위기에 염증을 느끼고, 새로운 신학의 방법론을 발견해야할 신학자로서의 자신의 본분을 의식했을 뿐만 아니라, 신학을 문학과 철학적 미학의 범주에서 새롭게 인식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서 그의 신학적 사상의 형성은 신학과 문학, 철학을 관통하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의 만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1) 에릭 프시와라 (Erich Przywara. "에리히 프지와라" 라고도 불린다. 1889~1972)의 ‘존재의 유비’

에릭 프시와라


발타살은 에릭 프시와라와의 만남을 통해 현대 중반기를 지배하고 있던 신(新)스콜라 학파의 ‘이층 구조적(二層構造的)인 세계관’, 세상을 자연(自然)과 초자연(超自然)으로 구분하려는 태도를 극복할 수 있었다. 당시의 신스콜라 학파에 의하면. 그 자체로 독립되어 있는 하나의 ‘순수한 자연(natua pura)’이 있고. 그것은 그 고유한 ‘자연적 목표’를 가진다. 그리고 여기에 ‘은총’과 그 ‘초자연적 목표’가 하나의 ‘부가물(附加物)’로 주어진다고 하였다. 이런 주장은 은총의 무상성(無償性)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으로, 결국 인간 본성에 주어져 있는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갈망’은 하나의 부가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프시와라는 당시 큰 호응을 얻고 있던 초월 신학적 주장은 신의 초월성이 인간의 본성에 함몰되어 버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회의적인 태도를 가졌다. 즉 신(神)의 자기계시가 결국 인간의 정신에 내재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는 위험을 지적했다. 그래서 프시와라는 출발점을 인간의 주체성, 즉 정신의 자기실현에 두지 않고, 세계의 대상성(對熱注), 즉 현실에 두었다. 그리고 거기서 신과 세계가 얻어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자리를 찾으려 하였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 이론을 통해 전개되었고, 발타살은 그의 이러한 노선을 이어받아 자신의 사상을 전개 발전시켰다. 프시와라에 따르면 대상적인 현실은 이중의 극(極)을 갖는다. 그것은 ‘지금 있음(存在, das Dasein)’와 ‘본래부터 있음(本質, das Sosein)’의 긴장 관계로 드러나며, 다른 한편 그것은 ‘피조물’(Geschöpf)과 창조자(Schöpfer)의 긴장 관계로 드러난다. 이러한 긴장 관계를 프시와라는 ‘존재의 유비’라는 이론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즉 그는 피조물들이 근본적으로 유비적(analogisch)임을 강조하면서, 그들은 ‘신의 존재를 닳았다’라고 말하는 동시에 ‘닮지 않았다’라고도 말한다. 여기서 ‘닮았다’는 것은 그것이 실제로 지금 ‘있다’는 점에서 닮았다는 것이고, ‘닮지 않았다’는 것은 그것이 지금 실제로 있다 할지라도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실제로 ‘있다’는 것은 전적으로 신에 의해서 그 존재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신을 ‘닮았다’는 존재의 유비는 사물의 무조건적인 긍정의 근거이자, 사랑받을 수 있는 원리라고 이해한다.

다른 한편 유비는 그 ‘닮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사물의 ‘부정성(不定性)’에 근거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은 필연적으로 자기를 ‘넘어서서’ ‘보다 큰 것’ 그리고 ‘보다 높은 것’으로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보며, 결국에 가서는 초월적인 신의 존재에로 향해 나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이 점에 있어서 프시와라는 유비가 가진 양면성이 동격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 착안한다. 즉 창조자에 대한 피조자의 비유사성(非類似性)은 그 유사성에 비하여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크기 때문이다. 결국 ‘유비의 원리'(Analogieprinzip)’는 신과 세계 사이에 있는 모든 가능한 ‘동일성(同一性)’을, 또한 그때마다 뛰어넘는 ‘상이성(相異性)’을 말해 준다는 것이다. 피조자의 움직임(運動)은 끊임없이 ‘그 때마다 보다 더 큰 신(Deus semper major)’에게로 향해 움직여 나아가야 하며, 결국 프시와라에 의하면, ‘유비’란 모든 인식을 넘어서서 인식 불가능한 신을 향한 인간을 이끌어 들이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프시와라는 말년에 점점 더 유비의 비동일성(非同-性)을 강조한 나머지 모든 동일성을 사라지게 한 반면, 발타살은 유비의 동일성을 유지해 나갔다. 즉 피조자가 가진 무조건적 긍정성을 굳게 견지해 나갔던 것인데, 바로 여기서 그들의 사상은 달라졌다. 발타살에 의하면. 세계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는 ‘창조’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세계는 창조를 통해서 그 고유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함으로써 무조건적인 긍정성 하나는 결코 잃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유일회성을 지니기 때문에 피조물적인 것은 잠정적인 것이며,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완성될 수 없고 건너 뛸 수 없는 한계를 갖는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그는 ‘창조’를 통해서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고 그 때문에 거기에는 결코 파괴될 수 없는 하나의 공동성이 형성되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2) 칼 바르트 신중심적 계시 사상. '신정통주의(Neo-Orthodoxy, 독일어: Dialektische Theologie)'

칼 바르트


20세기 개신교 신학의 거장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는 당시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신과 세계는 전적으로 철저하게 서로 대립되어 있다는 ‘절대적 변증법(Dialektik)’을 통해 존재의 유비가 아닌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를 강조한바 있다. 그에 의하면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존재론적 유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안에서, 그리고 그 안에서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유비성을 지녔을 뿐이라고 말한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노선에 서 있던 바르트는 다분히 인간의 존재론적 본성이 죄로 인해 완전히 파괴 되었으며, 이는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으로만 재생될 수 있을 뿐인데,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구원은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대한 확신에 찬 신앙의 응답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당대의 인간학적 중심의 자유주의 신학이 팽배해 있던 시기에 칼 바르트의 하느님의 초월성과 구원 은총의 절대성에 대한 강조는 여타 종교와 그리스도교를 명백히 구분하는 잣대가 되었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종교와 차원이 다른 것으로 이해하여, 비록 명시적이진 않았지만 발타살의 미학적 신학에서 신중심적 계시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바르트가 주장한 그리스도론 중심의 신학도 발타살의 신학적 미학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자기 계시를 이해하는 데 커다란 사상적 배경이 되었음은 간과할 수 없다.

3) 아드리엔느 폰 스파이어(Adrienne Kaegi-von Speyr)와의 영적 체험

아드리엔느 폰 슈파이어 Adrienne von Speyr (1902 – 1967)는 스위스의 가톨릭 내과의사, 작가이면서 신학자였다. 그는 신학과 영성, 신비와 성흔에 관한 60여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앞서 언급한대로 발타살의 신학적 영감과 교회에 대한 새로운 사상은 그의 평생의 영적 동반자였던 아드리엔느 폰 슈파이어와의 영적인 교류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아드리엔느는 발타살이 느낀 당시의 신스콜라 신학에 대한 염증에 동감하면서 교회의 역할과 과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제공했다. 아드리엔느는 그의 저서에서 "수도원에서의 전 학업은 철저하게 신학의 무미건조함과 인간을 계시의 영광으로부터 떼어놓으려는 참을 수 없는 싸움이었고, 하느님 말씀의 형태를 이렇게 만들어 내는 일을 참아낼 수 없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녀의 이러한 영적 감수성과 통찰력은 발타살이 당시의 신스콜라 신학이 계시의 진실성을 사변적이고 개괄적으로 조직화하려던 태도 신앙을 인간의 감성적 체험과 결단 보다는 교리내용에 대한 동의로 축소해왔다는 맹점을 지적했다는 데에서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아드레엔느의 여성으로서의 영적 감수성과 미적 체험은 곧바로 발타살의 계시 신학에 대한 이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그가 예수회의 이상과는 다른 새로운 영적 공동체를 통해서 세상 속의 교회를 새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다. 아드리엔느는 세상 안으로 파견된 교회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서 발타살에게 영적 공감을 주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에게 파견되었다는 사실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어떻게 찾아나가야 하는 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고 본다.


4) 앙리 뒤 뤼박 (Henri de Lubac)의 새 신학(신신학이라고도 불린다).
프랑스 리옹을 중심으로 이른바 ‘새신학(nouvelle theologie)’과의 만남은 발타살의 신학적 전환을 이루는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새신학의 중심에 있었던 앙리 뒤 뤼박(Henri de Lubac)은 하나의 신학적 체계보다는 풍부한 그리스도교 유산을 작업해 내는 일에 전념한 신학자로서 인간의 본성이 하느님에 대한 관조와 무관하게 이해되어질 수 있다는 토마스의 자연과 은총에 대한 이론에 깊은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느님과의 공동체성에 깊이 관여되어 있으며 인류는 단 한 번도 하느님 은총에 배제되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이 점은 발타살의 세상에 대한 긍정과 삼위일체적 공동체성 안에서 신학의 중심점을 찾아내는 데 더할 나위없는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5) 칼 라너의 초월신학에 대한 비판과 미학적 관심
칼 라너는 발타살과 같은 시대의 예수회 회원이자 20세기 신학의 큰 기둥이었고, 그의 초월신학의 노선을 따르고 있던 수많은 제자들과 추종자들의 폭 넓은 지지를 받았다. 초월신학에 대하여 발타살은 라너가 주장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에 대해 반박하면서 지나친 세계를 향한 교회의 개방성을 문제로 지적하였다. 그에 의하면 라너의 초월신학은 그리스도교적 파견 소명과 참된 그리스도적 증언의 정체성이 희석될 뿐만 아니라, 계시를 수용하는 인간과 스스로를 계시하시는 하느님과의 관계성을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했다는데 반기를 든다. 하느님 중심의 신학을 강조한 발타살에게 인간중심적이고 역사 비판적 방법론에 의거한 초월신학은 자연스럽게 신학의 인간학적 축소로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발타살이 관심을 두었던 신학적 질문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초월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런데 발타살은 이 초월이 라너에서처럼 정신적 존재로서 인간의 실존적 자기이해에서 밝혀진다기보다는 초월을 직관하는 인간의 지각 능력에서 이루어진다는 미학적 관점을 중시했다. 즉 인간의 초월은 과거 형이상학적, 윤리학적 관심에서가 아닌 인간의 내면적 직관의 체험, 즉 미학적 관심에서 해명하려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다.

발타살의 신학적 미학을 연구에 따르면 그의 내재적 초월의 미학적 관심은 다분히 고대 그리스인들과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목표라고 말하는 “신이 되는 것(神化)”에 대한 관심과 동떨어져 있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가령 플라톤은 인간의 행복이 영혼에 날개를 달고 계속 상기(想起 anamnesis)하면서 이데아(idea)의 세계로 올라가 그 축복받은 광경을 관상(theoria)하는 데 있다고 말하여, 이데아의 관상이 영혼의 본래 모습이자 완전한 자이자 신이 되는 것임을 말한 바 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관상이 인간의 최고 행복이라고 말하며, 지성이 인간을 초월한 신적인 것이라면,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최고의 부분인 지성에 따라 사는 신적인 삶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플라톤 주의자였던 플로티누스는 인간의 행복은 일자(一者)를 보는 것이며, 인간이 가장 고차적인 것의 일부임을 깨닫는 순간이자 최선의 삶을 신적인 것과의 완전한 합일로 이해하였고, 이는 갑자기 찾아오는 그리스도교의 은총과도 같은 것이라는 주장을 통해 그리스도교 신비주의 사상의 태동을 알리기도 했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들의 가르침 역시 인간의 신화(神化) 사상이 다분히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2 베드 1, 4)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신화 사상이 인간의 이성과 철학으로부터 단절되기 시작한 것은 중세 후기 스콜라 신학의 종언을 이끈 윌리엄 오컴(1285-1347)에 의해서였다. 이른바 오캄의 면도날이라는 말처럼, 그는 유명론(Nominalismus)을 통해 신적 본성에 참여하였던 인간의 초월적 능력을 인간의 이성적 성찰에 바탕을 둔 철학적 사유로부터 분리 시켰고, 이윽고 칸트가 순수 이성의 물자체(物自體)에 대한 인식 불가능성을 선언함으로써 신적 지성의 상부 구조를 인간의 유한한 지성으로 축소시켜, 지성(知性)의 오성(悟性)화(Verstand) 뿐만 아니라, 지성과 이성 사이의 서열의 역전을 알렸고, 이는 헤겔의 관념철학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절대정신에 대한 해석을 통해 예술과 종교의 단계를 인간 이성의 영역에서 지양시키는 근대 계몽주의의 태동을 알린 바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성의 좌절과 계몽의 합리주의의 종말을 선언하고 나선 포스트모더니티의 시대는 이미 신의 죽음(니체)을 선언하고, 단지 신의 현존을 가리키는 표징뿐인 세상(로마로 과르디니)을 경험하고 있는 인류의 현실을 직시하게 해주고 있다. 과거 계몽주의의 시초가 된 “칸트가 신적 지성을 버리고 인간의 이성으로 귀의했듯이 20세기 후반의 현대인이 이성을 버리고 동물적 감각에로의 귀의”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지적은 발타살이 인간의 미학적 지각능력을 신학의 출발점에 두면서도, 이 미학적 관심이 철저하게 인간의 영적 체험을 지향하고 있음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4. 발타살 신학의 기점

발타살이 신학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가졌던 몇 가지 질문들은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출발점이 되고 있다. 그는 학문적, 신학적 방법론에서, 그리고 호교론적 입장에서 다음의 세 가지 질문들을 던지고 이에 대한 자신의 사상적 전개를 펼쳐 나간다

① “어떻게 그리스도교의 특수성을 여타의 인간 정신과학의 흐름들과의 관련 안에서 그 가치를 증명할 것인가?” (학문적-대화적 입장)
②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계시형태의 거룩함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신학적 방법론에 대한 논의)
③ “그리스도교 계시의 원천성과 참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타종교와의 관계 안에서 그리스도 계시의 우위성을 강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호교론적 입장)

이와 같은 신학의 내면적-자기이해적 접근 속에서 발타살은 다음 두 가지 신학적 기점을 중심으로 자신의 사상을 전개하였다:

첫 번째 기점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의 형태에 관한 지각론”(知覺論 die Erblickungslehre/Wahrnehmungslehre)이다. 여기서 말하는 ‘지각'(Wahrnehmung)이란 무한하고 초월적인 신에게로 가기 위한질료로서 감각이 신의 사랑 안에서 변모하여 아름다움 자체를 직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발타살은 여기서 “하느님에 대해서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하느님을 어떻게 느낄 수 있는가?”란 신학적 질문에 적극적인 해답을 찾고자 한다.

두 번째 기점은 “하느님의 영광의 육화와 그 영광에 참여하기 위한 인간의 탈자고양론”(脫自高揚論 die Entrückungslehre)이다. 발타살은 그리스도교 사상 문화가 지녀왔던 ‘아름다움(美)’이라는 전망을 자신의 신학 안에서 회복하고자 시도한다. 즉 그는 미학적 경향을 베제하는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해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하느님의 영광스런 계시에서 출발하지 않은 ‘미학적 신학’의 위험성을 내포한 가톨릭 신학 까지도 예리하게 비판한다. 이를 위하여 그는 동방 교부들, 특히 오리게네스, 니싸의 그레고리오, 그레고리오스 빨라마스 등을 중심으로 한 교부들의 영적 감각론에 깊은 영향을 받으며, 인간의 완성은 자기에게서 벗어나(脫自) 존재 자체이신 “신으로부터 높이 올림 받는 것“(高揚)임을 강조하였다. 이는 그의 스승인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영적 감각론과 존재의 유비에 대한 프시와라의 가르침과 무관하지 않았다.


5. 발타살의 신학적 주제들

발타살은 미학(美學)을 신학과 접목시켜 그리스도교 계시사건을 해명하면서 그의 대표저서인 3부작을 통해 자신의 신학적 사상을 심도 있게 전개해 나갔다.

1) 신학적 미학(Theologische Ästhetik): 신학의 미학적 관심
발타살의 신학은 하느님 계시의 진실성과 확실성에 근거한다. 그는 어떤 순간에도 신학은 자신의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그 뿌리로부터 신학은 모든 영양분을 섭취해야 하며, “우리가 신앙 안에서 하늘을 향해 열린 눈으로 바라보는 관상을 통해, 또한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 삶의 순명을 통해서 그러하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진리와 사랑을 믿는 마음으로 타당하게 인정할 때 우리는 계시의 내용들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신 중심적 신학은 자연스럽게 거룩함의 현현을 인간이 어떻게 ‘지각’(知覺 Wahrnehmung)하느냐에 대한 관심을 낳았다. 하느님 계시의 진실성은 계시 사건의 거룩함을 지각하는 인간 안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내재적-자기이해적), 존재와 실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현현의 거룩함을 지각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아름다움(美)의 발견이라고 본다. 이것은 결코 플라톤적 이데아론에서 말하듯 본질적인 것이 아닌 표상의 지각이 아니라, 진정한 존재의 실재를 여타의 다양성과 구체성 안에서 내적으로 직관하는 것이기 때문에 추상적일 수 없으며, 구체적인 실재를 관조하려는 인간의 지각능력을 동반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그가 주장하는 지각론은 신스콜라 신학이 말하는 객관적 계시 내용에 대한 지적 동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즉 계시 사건을 인간의 지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내용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신학적 태도의 가장 잘못된 점은 지각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간과, 이른바 ‘볼 수 있는 능력(Sehvermögen)’의 상실에 기인한다고 본다. 이 무능력 혹은 상실은 한마디로 구체적인 방법으로 스스로를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이에 대한 인간의 응답의 상호 작용에 대한 충분하지 못한 통찰에 기인한다고 발타살은 말한다.

발타살은 그의 대표저서 ‘영광(Herrlichkeit)’에서 신앙의 빛에 대한 인간의 사유방식에 관심을 갖는다. 즉 신앙의 본질적인 대상을 지각하려는 방법에 대한 관심은 그가 신학의 대상과의 밀접한 관련성 속에서 하느님의 말씀에로 결정적으로 이끌려지는 우리 인식의 현실을 강조하고자 함이었다. 그에 의하면 신앙이란 믿는 이들의 자기이해의 변화가 아닌 “신앙의 대상인 예수 그리스도를 포착하고 그와 인격적 관계를 맺는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신앙의 ‘인격적 성격’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발타살이 신학에서 미학적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인간이 진리를 수용하고 진리 안에서 성장하는 방법을 통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을 해명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이는 신앙인이 신앙의 대상을 감지하고 이해하며 신앙대상의 무한성과 관련되어지려는 지각능력의 개발이야말로 계시사건의 확실성에 이르는 길임을 강조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신앙 대상에 대한 관심은 신앙 대상이 스스로 안에서 완전하고 완결하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마치 예술 작품 대상을 인간이 깊이 파악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한 것처럼 신학의 대상인 하느님의 계시 사건에 대한 이해 역시 유비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의 계시를 지각하는 인간의 능력과 인간이 지각할 수 없는 하느님의 절대적 초월성을 인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자기계시의 형태에 관한 지각론(知覺論 Wahrnehmungslehre)으로서 신학을 이해하고자 한 신학의 양면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신학은 이른바 요한사상에서 보듯이 ‘위로부터의(von oben)’ 신학적 성향을 다분히 띠고 있다. 오로지 ‘위로부터’ 내린 은총 안에서, 즉 하느님 의 은총 속에서, 그리고 은총을 수용하는 인간의 신앙의 내적 준비로부터 신적인 계시는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한마디로 믿음에로 자신을 투신한 이성(理性)만이 계시를 사실로서 해명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천적이고, 자유로운 결단을 요청하는 드라마틱한 준비 없이, 역사 속에서 하느님 말씀의 육화가 궁극적인 정점에 이른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실천적인 행동 없이, 또한 인간의 총체적 투신인 신앙 안에서 하늘을 향한 열린 기도와 진리를 이해하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만드는 삶의 복종의 구체적 실천 없이 하느님 계시에 대한 참된 현실과 계시의 구체적인 내용에 동참할 수 없다. 중요한 점은 하느님의 계시의 영광에 인간이 얼마나 자서전적인 삶의 투신을 통해 신앙의 응답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2) 신의 연극학(Theodramatik): 계시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 사건
이러한 발타살의 신학적 지각론과 미학적 관심은 그리스도교 기초인 계시 사건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지나치게 체계적이고 사변적이자 추상적으로 축소시킨 신스콜라 신학의 비판에서 출발했다. 발타살은 신학의 본연의 임무가 그리스도 계시 사건의 진실 되고 올바른 해명이어야 하며, 계시 사건의 해석은 하느님 계시의 절대적 권위에 입각하여 해석되는 계시 사건 그 자체로부터 이루어져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성서 신학적인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에 따르면 신학이란 인간의 언어와 사유를 지향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며, 신학의 참된 과제는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에 대한 신뢰로서의 신앙을 지니고 하느님의 육화 사건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 창조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즉 신학이란 당대의 인간학적 신학이 시도한 성서적 신화를 해체하는 것이 아닌 신화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증언의 명증성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발타살은 그리스도교 계시를 이해하는 잘못된 점이란 이제까지 신학이 인간의 지각능력과 직관능력을 통해 계시를 ‘신의 연극학’ 혹은 ‘하느님의 드라마’(Theodrama)로 이해하지 못한 점에 있다고 보았다. 신학이란 한마디로 신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을 이루어내는 자유 사이의 상호작용의 드라마이며, 이 드라마는 허위나 과장이 아닌 현실에 대한 극적 연출을 이끌어내는 감동적인 사건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계시 이해의 핵심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의 상황에 대한 깊은 직관적 통찰에 달려 있으며, 하느님의 말씀과 인간의 신앙, 즉 하느님으로부터(Theologie von oben) 선사되고 교회를 통해 전달된 신앙과 이러한 신앙 안에서 요청되는 부르심을 수용하려는 계시와 신앙의 구조를 이성적 사유를 통해 해명하려는 것이 신학의 과제임을 강조했다.

이렇게 계시 사건을 지각하는 신앙의 지각능력을 강조하는 지각론과 더불어 신앙의 구조 속에서 발타살의 계시 이해의 핵심을 이루는 이른바 ‘탈자고양론(Erweckungslehre/Entrückungslehre)’의 의미가 밝혀진다. 그가 말한 ‘탈자고양론’이란 어떻게 인간이 계시 사건을 지각하는 행위가 구원적 체험이 될 수 있는 지를 일러준다.

먼저 발타살은 신앙적으로 깨달음을 얻은 이성만이 계시를 참된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하면서 계시 이해의 전제조건으로서 신앙을 강조한다. 마치 전제조건 없는 학문이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신앙은 역사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과(구약) 하느님 말씀의 육화 사건에서 정점에 이르는(신약) 행동적이고 자유로운 결단을 요구하는 드라마틱한 계시 사건을 수용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임을 밝힌다. 이 점은 사변적, 추리적, 이성적 추론과 선험적 구조의 분석을 통해 계시와 신앙을 해명한 칼 라너의 초월신학적 입장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그의 ‘탈자고양론’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교 계시 사건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자유의 드라마틱한 사건의 중심으로서, 예수의 파스카 사건, 즉 수난과 죽음, 부활에로 이끌려지는 ‘신의 드라마(Theodramatik)’이다. 그 속에서 인간은 지각될 수 있는 의미사건으로써 하느님의 계시를 설득력 있게 증언하고 선포하는 것이 가능함을 인정하게 된다. 이는 하느님의 초월성을 바탕으로 계시 사건의 자명성이 인간 이성의 자기 해명능력이 아니라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유래됨을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본다. 이 말은 신의 드라마가 하느님의 본질적인 자기 해명, 즉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자신의 본질을 드러내는 드라마틱한 사건이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완전한 형태로 드러났음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중세 신학자 성 안셀모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그 보다 더 큰 것을 상정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정도로 하느님의 자명성을 인정한 것처럼 삼위 일체 사상에 대한 깊은 통찰은 계시 사건의 자명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고 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 계시 사건의 자명성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통한 하느님께 대한 절대 복종이 창조적 원천이신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성부)와 하느님의 파견에 절대적인 복종을 드러내고 자신을 버리는 인간으로서의 예수(성자), 그리고 이 연결 고리의 단절이 아닌 절대적 사랑에 근거한 파견자와 파견된 자와의 깊은 관계를 가능하게 해주는 성령의 삼위일체적 신비에서 그 절정에 달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그리스도 드라마는 인간 현존재의 모든 드라마틱한 사건들의 표준이다”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이 하느님의 드라마를 “직관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는 사건을 말한다. 즉 하느님 영광, 그 분의 사랑에 인간이 완전히 ‘빠져 들어가는 것(Eingeholtwerden)'을 말하며, 이로써 인간은 더 이상 관망자가 아니라 영광의 공동행위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발타살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 말씀의 육화라는 것을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역사 안에서 하느님이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그 분의 구원업적의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만 이해되는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한 유일하면서도 참된 계시사건은 신앙 이전의 이성의 영역에서 던져진 질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본성을 체험한 이후에 인간 이성의 질문이 신학적으로 정당화된 것임을 강조했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 계시의 가장 위대한 표징이며, 외적인 표징으로 머무는 것이 아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의 정점임을 깨달은 후 이 사건을 이성적으로 해명할 때 본래 신학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발타살의 ‘지각론’과 ‘탈자고양론’은 인간의 자기이해와 신앙의 각성체험을 이끄는 중요한 신학적 출발점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즉 하느님의 영광과 사랑이란 사건에 인간이 완전히 몰입되어 스스로 그 사건에 드라마틱한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한 것은 인간이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동반자임을 드러낸 것이다. 이 점은 인간이 지닌 감정이입의 드라마적 요소를 신학 안에 받아들여 실제로 인간의 사랑체험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절대적 사랑의 유비적 체험일 수 있음을 깨닫는 단초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3) 신의 논리학(Theologik)
발타살의 신학적 미학은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지각능력을 바탕으로 예수의 십자가 사건 속에서 발견된 탈자(脫自), 자기비허의 의미를 직관하는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신학의 영역만은 아니다. 그의 삼부작에서 세 번째 저작인 ‘신의 논리학’(Theologik)은 하느님의 거룩함이 스스로 현시되는 계시 사건 속에서 역설적 논리가 존재한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이다.

여기서 말하는 역설적 논리란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발생하는 역설적인 인식의 형태들을 비교함으로써 하느님 계시 사건의 명증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상의 존재와 하느님의 존재 사이에서 드러나는 유한성과 초월성에 대한 인식, 세상의 아름다움과 하느님의 영광 혹은 거룩함을 지각하는 인간의 태도의 차이, 세속적이고 유한한 인간의 자유에 반하여 신적이고 무한한 하느님의 자유에 대한 통찰 등은 피조물인 인간이 인식하는 진리 구조보다 우월한 신적 진리를 강조하는 내용들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신학적 성찰은 철저하게 신 중심적 사유의 결실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그리스도의 드라마는 모든 인간 실존의 드라마의 표준이다. 어떻게 예수의 삶과 죽음, 부활로 완성된 과거의 하느님의 계시 사건이 현재적인 사건이 될 수 있는가? 그래서 결국에는 모든 인간의 자유행위가 역사 범주 안에서 어떻게 하느님의 자유의 최고점과 만날 수 있게 되는가?”라는 점과 “어떻게 하느님이 인간의 역사에 드라마틱한 주체로 등장하면서도 자신의 신적 초월성과 절대성을 상실하는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무한한 신적 자유가 유한한 인간의 자유에 종속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발타살은 하느님의 초월적 은총인 자유가 이런 점들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인간의 자유가 하느님의 자유에 정초되어 있고, 인간의 실제적인 자립이 하느님으로부터 가능하며 하느님께 대한 깊은 긍정을 통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의 계시사건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기 비허 사건, 즉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비우신 삼위일체 하느님의 자기계시 그 자체에 대한 감동과 경탄을 신학의 기초 원리로 이해할 때 그 자명성이 얻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와 동시에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자기현시의 명증성이 전달되는 인간의 신앙도 하느님 말씀에 대한 철저한 복종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그리스도교 전승의 풍요로움과 충만함을 신적인 말씀에 대한 신앙인의 복종을 통해서 배워갈 수 있는 것임을 강조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말하는 신앙은 무조건적인 신앙의 맹종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사유적 능력, 즉 자유와 이성의 통합적 능력이 하느님 계시에 대한 이해와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진리와 선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모든 지각능력이 신적인 자기현시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는 고리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더 나아가 신앙의 이 같은 사유적 능력은 다분히 역사 안에서 이미 자신의 지각 능력을 통하여 신적 자기 현시와의 만남을 이룬 성인들과 교회의 교부들에게서도 발견된다. 이들에게서 신앙의 유산을 배운다는 것은 발타살에게 있어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느님의 말씀의 힘에 철저하게 순명한 마리아적 영성을 사는 것이고, 이는 순수한 수동성으로서의 신앙 복종이야말로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창조적 응답임이 강조된다.

이런 점에서 신학은 철저하게 교회에 뿌리를 두지 않을 수 없으며, 교회야말로 하느님 자신 스스로를 드러내는 계시에 대한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신앙의 공간이며, 바로 교회 안에서 하느님의 자기계시가 수용되고 응답되어질 수 있다. 교회는 하느님의 자기계시를 포착하고 이에 응답할 수 있는 신앙의 공간이며, 교회란 하느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드러나는 장소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계시를 이해하는 데 교회가 차지하는 중대성이 재차 강조될 수 있다. 즉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 교회의 성사들과의 깊은 연관 속에서 또한 교회의 마리아적인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순명의 정신과 오류에 빠지지 않게 보증해주시는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말씀을 그 분의 온전한 다스리심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가장 명확하고 분명한 통찰과 보증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4. 신학적 평가와 공헌

발타살은 신스콜라 신학의 사변적인 신학 체계에서 상실되어 가는 하느님의 거룩함에 대한 인간의 신앙적 태도와 계시의 아름다움을 신학적으로 재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칼 바르트의 신 중심적 신학의 지평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는 인간의 신앙의 결단이 인간의 이성적 성찰을 통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이 점은 당시 불트만의 성서 텍스트의 탈신화적 해석을 강조한 실존적 성서 해석학이 신앙 대상을 소진시키고 신학을 실존적 도덕론에로 환원시킬 수 있는 위험을 지녔음을 강하게 비난하는 기점을 마련하였다.

발타살의 신학은 한마디로 서구 문화와 신학 안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는 그리스도교에게 신학이란 계시의 아름다움이 역설적 방법으로 드러나는 곳에서 가능함을 일러주었다. 그럴 때 비로소 신앙 대상에 매료되어 매혹과 설득력 을 지닌 그리스도교 신앙행위가 가능하며, 칼 라너의 초월신학에서 계시의 수용조건을 선험적으로 개진하는 것과는 달리 신적 거룩함에 대한 인간의 관조능력을 재발견하게 된다.

발타살이 던진 하느님 계시의 가능조건은 아름다움을 관조할 수 있는 인간의 지각능력이며, 이는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순수한 은사적 선물의 성격을 띤 것이다. 그는 참된 계시의 관조는 선물로써 주어질 뿐만 아니라 이미 계시 사건을 깊이 지각한 교회의 성인들로부터 배워져야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영적 지각능력은 그가 몸 담았던 예수회의 이냐시오 영신수련에 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교적 거룩함과 아름다움의 관점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시도하면서 인간의 내적인 감성적 구조와 능력에 대한 새로운 해명과 존재의 은사적 성격과 창조성에 대한 새로운 성찰은 발타살 신학의 탁월함을 엿보게 해준다.

발타살은 새신학의 흐름을 주시하면서도 호교적 입장에서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교적 전통의 아름다움을 제시하고 이를 설득력 있게 호소하였으며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미학의 중요성을 강조한 신학자로서, 인간이 인식형태를 지각의 범주를 통해서 신앙의 외부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은 내재적으로 근거 지워진 인간의 자기이해를 신앙의 근거로서 해명하는 새로운 신학적 방법론을 시도하였다. 그의 신학사상은 한마디로 아름다움은 그 스스로 명증성을 소유하고 있음을 통찰한데 있으며, 그에게 있어서 기초신학이란 ‘지각론’과 ‘탈자고양론’의 두 축을 통해서 참됨과 선함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원리로서 파악되었다. 신학이란 계시의 완성에로 인간의 존재를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며, 계시의 아름다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고 구체화된 하느님의 절대성에 근거함을 밝히고자 했다.

그러나 발타살의 이러한 신학적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학은 이른바 ‘계시 긍정주의 (Offenbarungspositivismus)’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계시의 자명성에 대한 이성적-비판적 해명보다는 그 자명성을 이미 긍정하는 입장에서 자신의 사상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의 진리와 삶의 발견의 역사를 그리스도교 신앙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바라보는 입장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보편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교회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그리스도교 우위성에 대한 신학적 논란을 초래했다. 더욱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계시 사건의 아름다움을 증명할 공통 근거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은 그의 신학이 지닌 한계라고 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타살의 신학적 미학은 신의 계시를 갈구하는 인간의 내재적 정신노력에 대한 깊은 통찰을 통해서 칼 라너의 초월신학이 지닌 신앙의 투명성의 와해를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앙을 그리스도의 계시사건과의 만남의 응답으로 해명한 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사건의 이해에 결정적인 공헌을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발타살의 신학이 개신교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J. Moltmann)의 십자가 신학에 많은 영감을 준 점이나 변신론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자기 비허 사건을 통해서 유럽 역사의 유대인 대 학살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 성찰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다는 점 역시 간과할 수 없는 그의 공헌이라 할 수 있겠다.


참고문헌

김산춘, 발타살의 신학적 미학- 감각과 초월. 분도출판사 2003.
리차드 빌라데서, 손호현(역), 신학적 미학, 상상력, 아름다움, 그리고 예술 속의 하느님, 서울: 한국신학 연구소 2001.
존 오던닐, 장홍훈(역), 전 존재는 사랑이다 -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의 신학 소묘:복음과 문화 9호, 대전가톨릭대학교 2005
R.M. 도런, 로너간과 발타살. 方法論的 考察: 신학전망 119호, 광주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7.
  

*본 글은 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List.do?blogid=0OBWi&categoryId=8 에서 발췌하여 수정, 추가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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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타살을 알고 싶으신 분은 http://www.ignatius.com/promotions/balthasarbooks/balthasarbooks.asp  https://www.youtube.com/watch?v=uqSenlCcFws 이곳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독일어가 가능하신 분은 https://www.youtube.com/watch?v=mURcv7V9rlo 의 발타살 본인의 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Hans Urs von Balthasar - 1984 big last interview

Interview to Erwin Koller in 1984 More information: http://marianum.academia.edu/DanielAfon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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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shop Barron on Hans Urs von Balthasar (Part 1 of 2)

Another part of a video series from Wordonfire.org. Bishop Barron will be commenting on subjects from modern day culture. For more visit http://www.wordonf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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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balthasarbooks.com | Hans Urs von Balthasar | Ignatius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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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Hans Urs von Balthasar)과 그의 신학적 미학. part 1.|작성자 책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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