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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유비론 공부

2%_Root 2019. 6. 10.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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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위선적인 신자보다 무신론자가 낫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과 행동이 다른 신자보다는 무신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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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실 이전부터 이 주장을 했지만 언론에서는 항상 어떤 무엇인가를 비판하기 위해서 끄집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무엇인가는 아마도 오늘날 '개독'이라고 불리우는 집단에 대한 비판이겠지요. 

 

가톨릭에서는 1960년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부터 이 입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교의학적 용어로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이 익명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관심은 고대부터 있었습니다.


1.고대의 관점
초대 교부들은 기독교를 신학이 아닌 하나의 철학으로 받아들이고 철학으로 변호하였죠.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그리스 철학은 하느님의 섭리이고, 하느님이 그리스인들에게 빌려준 선물이다" 라고 이야기했으며, 오리게네스, 니사의 그레고리, 어거스틴, 성 바실 등등 초대교회의 수장들은 그들을 선교의 대상이자 같이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보았습니다.


 

2.중세의 관점
중세에는 토마스 아퀴나스가 "존재의 유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카톨릭 신앙을 정립합니다.

(1) 어떻게 우리의 유한으로부터 나온 개념을 가지고 무
한에 관한 유의미한 진술을 할 수가 있는가?

(2) 어떻게 우리가 피조 세계로부터 창조주의 본성을 도출해 낼 수 있으며, 어떻게 특별 계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자연신학에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가?

 

이것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없더라도(특별계시) 종말의 때에 자연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목격하고 느끼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가?(일반계시)" 라는 의문으로 도출됩니다. 아퀴나스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심판의 하나님" 신앙과 "자비의 하나님"신앙이 충돌하는 부분임에도 아퀴나스는 그것을 잘 매듭지었죠. 그는 실재론자였으니까요.

유비의 이론은 유명론으로 알려진 오캄의 윌리엄부터, 인문주의자들, 18세기와 19세기의 개신교, 무신론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3. 근대의 관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의 영향 하에 있던 철학자들은, 유한한 인간의 지성으로는 무한한 하나님의 본성을 알 수 없다고 전제하고, 그들이 기독교 신앙을 변호할 때는 그 변증학의 기초를 철학적 회의주의에 두었
습니다.

 

"이성으로 초월을 알 수 없고 신앙으로 가능하다"는 그들의 자세는 사실 개신교의 믿음에서 출발한 점이 아이러니입니다.

 

반면, 헤겔(Hegel)을 비롯한 관념 철학자들의 영향 하에 있던 철학자들은 인간의 지성이나 이성이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적인 유비를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3.개신교 신학과의 충돌
유비의 이론은 현대 개신교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에 의하여 다시 한번 공격받습니다.
그는 유비론을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으로 부각시킵니다.

그는 다시 유비론을 정의한 과거의 논제들을 살핍니다.
(1) 하나님에 관한 유의미한 진술이 어떻게 가능한가? 
(2) 어떻게 피조물로부터 창조주의 본성에 관한 추론이 가능하며, 또한 자연신학의 기초는 무엇인가?

바르트는 유비론의 두번째 용법, 즉 자연신학의 기초로서의 유비론을 반대합니다.

 

예수 안에 나타난 계시를 믿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이 인간과의 유사성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이나 감성, 노력으로는 도저히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계시에 호소하지 아니하고는 자연신학을 수립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유비론을 수립하려는 신학자들은 일반계시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동에 관한 특별계시를 구분하게되는데, 바르트는 이 또한 견딜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를 주창하면서 존재의 유비가 자연신학의 근거로 사용되는 것을 한탄하였습니다.

 

4. 왜 이런 주장이 나왔나
다시 칼 라너로 돌아가면, 그는 바르트와 다르게 인간의 초월 가능성에 집중한 사람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피폐해진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인간 이해를 제공한 마틴 하이데거의 철학적 개념을 수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에 대한 질문은 현시점을 살아가는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은 단순히 사물처럼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현존재라고 했습니다.

 

라너는 이를 수용하여, 교회의 권위적 방법론을 탈피하고 '아래에서 위로'라는 인간중심의 신학을 전개했습니다.

라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과 임마누엘 칸트의 인식론의 통합을 시도한 요셉 마레샬의 철학을 수용했습니다.

그의 인간 이해의 핵심은 하느님을 찾아 자신을 끊임없이 초월하는 인간입니다.

 

낯설죠?


왜냐면 이 인간이해는 "동방정교회의 신앙"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라너는 고대의 교부들의 말을 인용해서, 하나님은 인간이 애써서 알려고 해도 도저히 알 수 없는 초월의 하나님, 무한의 하나님임을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무한한 현실인 하나님에 대해 제한되어있지만, 무한히 개방된 존재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사건으로 우리를 하나님께 다다르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5. 현대 가톨릭의 관점
인간은 기독교인이든지 아니든지, 무한한 신비인 하나님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을 성취해 나아갑니다. 이러한 가운데 인간은 더욱 자유로워지며 더욱 책임 있는 존재로 성장합니다.  인간은 무한한 현실을 거부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가졌고, 역사 내에서 책임을 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인간은 자신이 사는 세상을 하나님의 사랑에 상응해 구성하도록 노력합니다. 그는 이 전통적 관점을 다시 해석하면서,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이지만...

믿지않는 인간은 종말에 심판받기 전에
'익명의 그리스도인들'과 같이 하나님을 알려고 노력하고, 선하게 사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지 않겠는가? "


하는 물음을 제시합니다. 카톨릭은 이게 가능합니다.

연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인간의 본질적인 죄는 어쩔 수 없이 갖고 있지만 선하게 살던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6.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나
개신교는 정통, 복음주의 일수록 이를 반대하고 "오직 믿음으로" 라는 마틴 루터의 신학을 가져옵니다. 하지만 가톨릭의 입장을 옹호하는 소수도 있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만약 가톨릭의 입장을 받아들이려면 개신교신학의 핵심인 "이신칭의"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합니다. 이미 루터교는 1970년대부터 가톨릭과 대화하면서 이 격차를 점차 줄여나가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당시의 가톨릭은 루터의 이신칭의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의화(justification)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성화의 전단계인 은총으로만 이해했습니다. 루터는 의도적으로 가톨릭 신학을 무너뜨리려 했고, 가톨릭도 의도적으로 루터를 정죄하기 위해서 서로를 오해하고 공격한 것입니다. 

 

그리고 개신교에서 주구장창 해왔던 "선교"도 바뀌어야 합니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라는(Missio Dei)" WCC의 신학에 반대하는 교단은 특히 경기를 일으킬겁니다.


 

가톨릭은 정교회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성화의 최종단계인 "신화"(theosis)론을 알게 되었습니다. 신화론은 개신교의 성화론, 가톨릭의 의화론을 모두 보충해주는 이론입니다.

 

정교회는 "인간을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보기보다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을 예수님이 멱살잡고 이끄셔서 회복하는 존재"로 보기 때문에 가톨릭은 "이신칭의"가 전부가 아니란걸 알게됐습니다.

개신교도 정교회와 대화를 많이 하고 있지만 갈길이 멀 뿐입니다.


언제 이 논쟁이 끝날까요? 만약 끝나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 싸우는 일은 줄 것이라 믿습니다.

출처 아래 

https://blog.naver.com/sauruskim000/220954249640

 

'칼 라너'가 말했던 "익명의 그리스도인", 어디까지 알고 있소?

http://www.ytn.co.kr/_ln/0104_201702240221479286_012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실 이전부터 이 주장을 했지만...

blog.naver.com

 

여기 글  공부중 공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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