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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자 한스 우어스 폰 발타자르 공부

2%_Root 2019. 6. 1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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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우어스 폰 발타자르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

발타살은 라너와 동시대에 살던 인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이전 글에서 다룬 생에는 빼고,  그의 사상의 변화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1.앙리 드 뤼박
예수회에 들어간 발타살은 신학과 철학간의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에게 뤼박은 스승이 되어주었습니다.

뤼박은 인문학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신학의 문제로 받아들이며 프랑스 기초신학의 새 길을 열었습니다. 그는 역사와 타종교를 연구하면서 '그리스도 사건'의 위대한 유일성에 대해 분명한 확신을 가졌고,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인간에 대한 이해의 보편성을 확인했습니다.

1950년부터 불교에 대한 그의 심층적 연구는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의 초월적 본성을 더욱 확신하게 했으며, 신비주의에도 관심을 갖게 했습니다.

이와 같이 드 뤼박은 인문학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신학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그로부터 그리스도교 계시나 역사, 교회의 생활 전체를 일관성 안에서 다시 숙고하는 기초신학적 자세를 발타살에게 가르칩니다.

2.에리히 프시와라
청년기의 발타살은 프시와라를 만나는데 그의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철학자이기도 했던 프시와라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답습하는 가톨릭의 대안을 찾던 사람입니다. 특히 그는 존재의 유비를 역동적으로 해석합니다.

존재하는 사물은 필연적으로 자기를 ‘넘어서서’ ‘보다 큰 것’ 그리고 ‘보다 높은 것’으로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보며, 결국에 가서는 초월적인 신의 존재에로 향해 나아가려 합니다.

하나님은 신비이기 때문에 인간은 하나님을 찾고자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초월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에도 오히려 더 신비로운 분으로 남습니다. 신을 알려는 인간의 모든 노력은 결국 알 수 없는 하나님으로 향합니다.

이를 프시와라는 
"신을 초월하려는 영혼의 완전한 투신"으로 해석합니다. 존재의 유비가 어떤 이론이나 정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이고 동적인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발타살은 이 것을 깊이 생각하며 신앙적 방향을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아는가?"라는 토마스주의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느끼는가?"의 기초신학, 영성신학으로 전환합니다.

3. 칼 바르트
발타살은 최초로 바르트 연구서를 쓴 사람입니다. 바젤에서 노년의 바르트를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개신교 신학의 한계점을 발견합니다.

초기 바르트는 "존재의 유비"를 전형적인 토마스주의에서 이해했고 이를 강력히 거부합니다.
하나님은 오직 말씀으로, 말씀의 성육화된 예수로만 알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적 타자를 강조한 바르트는 바울과 루터의 전통에서 이를 해석하고 더 강조합니다.

그러나 노년의 바르트는 <교회 교의학>에서 신앙의 유비 안에 존재의 유비가 상당수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1) 만약 하나님의 계시가 절대적인 것이라면 피조물의 상태는 그 계시로 인해 존재가 말소된다, 그리고 신의 자존성 앞에서 피조물은 무(無)와 다름없다. 그리고 신에 의해 회복되고 돌아간다면 피조물은 최소한 기원과 목표에 있어서 신과 동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2) 유비는 궁극적인 "관계 용어"이다. 동일성이나 비동일성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의 개념이 지니는 진리는 창조된 것, 관계된 것, 한정된 것으로의 진리다.

 

이렇게 바르트는 신과 인간의 격차를 강조하면서도 그 거리를 벌림으로 생기는 피조물의 무가치를 "창조"로 메우려 합니다.
발타살은 바로 이런 개신교의 모습을 비판합니다. 바르트에게 창조는 성육신의 전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성서에서 말하는 계시는 그처럼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와 가지, 신랑과 신부처럼 상호성(mutuality)의 사랑이라고 발타살은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는 바르트에게서 존재의 유비와 신앙의 유비 사이의 접점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입니다.

발타살이 반대하는 것은 그리스도 중심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신자 사이의 일방적 대화 방식이었습니다. 극단적인 수동성은 세상에서 벌어진 하나님과의 격차를 당길 수 없다는 것이죠. 피조물의 자유가 없는 신앙은 그저 하나님의 독백에 지나지 않는다고 까지 말합니다.

4. 아드리엔 폰 슈파이어와의 만남
그녀는 교단 내에서 말이 많던 사람입니다. 그녀는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했지만 그녀만이 체험했던 '세상의 그리스도'는 재속회라는 모임을 만들게 이끕니다. 위에서 말했듯 기존의 가톨릭에 의구심을 가졌던 발타살은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큰 결심을 하고

예수회를 퇴회합니다. 로마노 과르디니의 후임자로 명성이 높았던 그가 탈퇴함으로 뮌헨 대학의 교수자리는 칼 라너가 이어받게 됩니다. 또한 강의를 열수 없었고, 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참석할 수 없게 됩니다.

그는 재속회야 말로 현재 세상을 이끄는 영성생활의 비의라고 믿고 평생을 가톨릭 잡지 편집장과 함께 투신합니다.

칼 라너가 진보적인 신학자라면, 발타살은 영성중심의 보수적인 신학자입니다. 라너가 칸트 중심의 계시를 향한 역동적인 인간상을 연구했다면 
발타살은 토마스 아퀴나스, 괴테 중심의 인간 본질의 형태에 집중한 사람입니다.

5. 동방 교부의 영적 감각론(spiritual senses)

신화(Theosis) 이콘. 이 이콘이 보여주려는 것은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하며, 그러지 못할 경우 언제라도 지옥으로 갈 수 있다는 경고이다.


그는 바르트의 영향으로 다시 그리스도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동방교부들의 접근에 집중합니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교부는 오리게네스, 니사의 그레고리, 그레고리 팔라마스입니다.

구원에 집중한 사람이 바울이라면, 삶과 생활에 집중한 사람은 베드로, 요한입니다.

동방 교부들의 목표는 인간의 신화(神化, theosis)입니다.(그리스도인=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


인간의 참된 완성은 감각의 영적 회복입니다. 헬레니즘 영지주의는 육체의 감각을 저급한 것이라고 하지만 동방 교부들에게 신체는 연료입니다.

마치 불타는 떨기 나무처럼, 하나님이 인간에게 임할 때 인간은 떨기나무처럼 손상되지 않고 없어지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의 임재속에서 정화됩니다. 변모합니다.

감각도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며 함께 죽고 다시 부활합니다. 정화된 감각은 자신 안에서 거울을 통하여 하나님을 봅니다.(마태 5.8)

그리스도인은 이 은총으로 영적 감각을 선사받습니다. 영적 감각은 선과 악을, 참된 빛과 거짓된 빛, 참된 아름다움을 식별합니다.

그리고 점차 육체의 감각을 넘어서서 영의 감각으로 인간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영적 감각은 사랑을 받아들임으로써 촉진되어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즐거워 하는 기쁨으로 가득차서, 하나님을 끝없이 그리워합니다.

6. 정리(신학적 미학은 영성신학, 예술신학이다)
발타살이 신학적 미학을 외친 것은 어떠한 예술적 접근을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과 은총 사이의 대화는 상호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부가 신랑의 프로포즈에 대답하듯이 인간은 응답해야 합니다. 그래서 끝없이 우리의 감각을 열어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한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신앙의 유비와 존재의 유비 모두를 비판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 만이 답이라고 결론내립니다. 그는 라너를 비판하면서 익명의 그리스도인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실천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출처] "익명의 그리스도인 논쟁에서 사랑의 유비로".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살|작성자 책두권

 

공부 중 

https://blog.naver.com/sauruskim000/22095425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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